흔적을 지워야 할 ‘필요’, Deletable SNS를 낳다.
분명 시작은 ‘필요’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오래 전 페이스북 사진 한 장에 혼사가 틀어진다거나, 생각없이 올렸던 지인 험담이 예상치 못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이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공감받는 것을 즐기던 SNS 이용자들은 어느 순간 마치 낯선 이가 내 집에 들어와 곳곳을 훑는 것과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이 커질수록 SNS상의 흔적을 지워야 할 ‘필요’ 역시 함께 커진다. 그리고 그 필요는 SNS상의 기록을 지워주는 다양한 서비스를 낳았다. 특정인과의 연애기록을 삭제해주는 런런 펀서우치(人人分手器), 계정 자체를 삭제해주는 세포쿠(seppukoo, 할복자살), 자살장치(suicide machine) 서비스는 이른 바 딜리터블 (Delet-able, Deletable) SNS의 원형인 셈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 지워져야 할 ‘필요’가 지워졌을 때, 또 다른 ‘재미’로 이어져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전쟁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화약이 오늘날 불꽃놀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목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딜리터블 SNS, ‘Just 10 Seconds’의 스릴로 무장하다.
재미를 등에 없은 딜리터블 SNS의 기본 전제는 대체로 비슷하다. 상대방이 확인하고 10초 가량이 지나면 메시지는 자동으로 삭제된다. (이른 바 자기파괴앱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다만 각 서비스별로 이용자들을 유혹하는 ‘컨셉’은 플랫폼과 문화에 따라 다채롭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냅챗과 페이스북의 포크, 버니버닛, 샤틀리, 프랭클리 등이 있다.
- 10초 안에 사라지는 사진, 10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다. “스냅챗”
스냅챗은 2013년 가장 핫한 SNS 중 하나이자 딜리터블 SNS의 원조격이다. 현재 사용자층이 점차 확대되곤 있으나 여전히 가장 열광적인 사용자는 10대에서 20대 초반이다. 창업자가 스냅챗의 강점을 “지금 이 순간 너와 함께 있어.”(Be With Me Now)라고 표현한 점은 이와 잘 맞아떨어진다. 10대는 친구들과의 친밀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바로 찍은 사진을 주고 받고 (사진첩에 저장된 이미지는 사용할 수 없다.) 10초 안에 메시지를 파악, 리액션하는 행위는 상당히 밀도높은 친밀함의 표현이다. 10초 안에 메시지가 사라진다는 일종의 스릴 역시 1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도 분명하다.
- 페이스북 메시지로 꼬리잡히는 일일랑 더 이상 걱정말 것. “페이스북 포크“
페이스북은 오늘날 가장 높은 영향력을 가진 SNS임에 틀림없다. 페이스북의 사용은 전세계 12억 사용자의 일상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중 하나가 메신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별도의 메신저 앱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인스턴트 사진 메신저 앱 포크(Poke)다. 왜일까? 스냅챗의 인기가 수직상승하는 것을 간파한 일종의 카피캣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또다른 이유도 추측할 수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의 사용이 때론 이혼소송의 증거자료로도 활용되며 일부 사용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점. 실제 포크에서 수신인이 메시지를 캡처하면 피드상에 특정 아이콘이 표시된다. 일면 사생활 보호의 기능이 강하게 느껴지나, 포크는 친구에게 쉽고 재미있게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장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 현실이 힘겨울 때 뒷감당 걱정말고 마음껏 지껄이자! “버니버닛”
버니버닛은 페이스북에서 메시지를 작성할 때 스스로 지워질 시간을 설정하는 facebook App이다. (현재는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독립된 SNS가 아니라 페이스북 상의 모든 메시지에 시간 제한을 설정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이 앱은 “현실이 힘겨울 때 뒷감당 걱정하지 않고 시원하게 표현하자”는 취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오늘 완전 짜증남. 김과장 노처녀 히스테리 부리는 듯 ㅉㅉ”라는 메시지로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1분에서 1일 후 삭제를 예약하여 뒷감당 걱정도 덜자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지인이 공유를 하더라도 원글과 함께 삭제된다.
- 굴욕과 재미를 그대 품안에. “샤틀리“
샤틀리의 기능은 위에서 소개한 서비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면에 내세운 슬로건이 굴욕전문메신저라는 것에서 개발자의 컨셉이 드러난다. 흔히 ‘유쾌한 굴욕’ 이미지는 SNS에서 많은 이들의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내곤 한다. 타인이 처한 곤란한 (때론 더러운) 상황이 한 장의 이미지에 압축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셈. 샤틀리는 이러한 굴욕 사진을 전면에 내세운 비쥬얼 커뮤니케이션의 스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샤틀리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예로 든 사진은 이런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래 사진 참고)
- 톡까놓고 이야기하자는 말입니다. “프랭클리”
프랭클리(Frankly)는 우리 말로 ‘솔직히’란 뜻이다. 위의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수신자가 확인한 후 10초 후에 메시지가 삭제되고, 누군가 대화 내용을 스크린샷으로 캡처하면 즉시 모든 참가자에게 이 사실이 공개된다. (아래 이미지 참고) 서비스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 그대로 ‘기록이 남지 않으니 진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서비스다. 프랭클리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나 전 남친 꿈 꿨어.”라는 문구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기업, 10초 짜리 재미로 소비자를 유혹하다.
대중이 몰리는 곳에 기업은 눈길을 줄 수 밖에 없다. 딜리터블 SNS 시장이 확산과 함께 이 영역에 특화된 마케팅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스냅챗을 활용한 타코벨, 포크를 활용한 이스라엘의 속옷 브랜드 델타란제리를 들 수 있다.
1. 스냅챗 + 타코벨, “쉿. 앞으로 비밀스러운 발표는 스냅챗으로 할게요.”
스냅챗 계정을 만든 타코벨은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앞으로 비밀스러운 발표는 스냅챗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밀스러운 발표’라는 말에 호기심을 느낀 팔로워들은 스냅챗으로 유입됐고, 이들은 타코벨의 신제품 ‘비프 크런치 뷰리또’ 사진을 스냅챗으로 받아보게 된다. 제한된 시간과 채널을 통해 소비하는 정보에 흥미를 느끼고 집중하게 되는 심리를 활용한 셈이다.
2. 포크 + 델타란제리
“모델이 옷을 갈아입는 영상을 포크앱으로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걱정마세요. 메시지는 곧 사라질테니까.”
보고 싶은, 하지만 남이 보아선 곤란한 대표적인 사례는 ‘야한’ 콘텐츠다. 이런 사람의 심리와 10초 내에 사라지는 포크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 바로 델타란제리의 이벤트. 약간 야릇한 영상을 보여주고 이 영상을 포크를 통해 친구에게 공유하게끔 유도한다. 좋은(?) 정보를 친구에게 공유하는 데에 흥미를 느끼는 남성 유저들의 심리에 기반한 마케팅이다.
조합과 역발상을 통한 새로운 개념의 SNS로의 진화
이처럼 재미의 옷을 입은 딜리터블 SNS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의 컨셉과는 별개로 유사한 기능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스냅챗의 카피캣이라는 꼬리표가 Ctrl C+V되지 않기 위해선 결합과 역발상을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
1. 결합 “FB + 런런 펀서우치 or 프랭클리= ?”
하늘 아래 100% 새로운 건 없다면, 현재 운영중인 SNS간의 기능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탄생하게 할 수도 있다. 페이스북과 런런 펀서우치를 결합하여 페이스북에서 특정 인물에 관한 흔적만 삭제할 수 있는 서비스라던지 예전 싸이월드에서 ‘내 미니홈피를 방문한 사람’을 알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 많은 관심을 얻은 것처럼 나에게 관심있는 사람을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이용자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페이스북 타임라인상의 사진을 캡처한 사람의 정보가 표시되는 식으로) 프랭클리의 기능을 흡수할 수도 있다.
2. 역발상 “마인드콜 SNS, 타임캡슐 SNS”
지금 써서 보내면 10초 후에 사라지는 것이 현재 딜리터블 SNS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발상을 통한 새로운 SNS의 탄생도 염두에 둘 수 있다. 이를테면 지금 작성한 콘텐츠가 하루 혹은 1주일 후에 나타나는 <마인드콜 SNS>도 충분히 가능하다. 모든 사고와 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지금 이 기분과 결정에 확신을 가질 시간을 스스로에게 제공하는 셈이다. 좀 더 나아가 지금 쓴 콘텐츠가 10년 후에 자신, 혹은 지인의 계정상에 나타나는 <타임캡슐 SNS> 역시 대중이 니즈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사람은 ‘표현’과 ‘망각’ 뿐 아니라 ‘추억’의 욕망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SNS,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다.
SNS는 우리의 욕망을 반영한다. 나를 표현하고, 공감받고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그 시작이었다. 문제는 사람의 욕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 나를 표현하고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망을 간파하여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만들어졌지만 폐쇄적인 인맥 관리의 한계와 이른 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등장’으로 지는 해가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너무 내가 노출되어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렇게 제한적 관계에 국한된 SNS인 비트윈이 등장했고, SNS상의 흔적을 지워야 할 ‘필요’를 느낀 사람들을 대상으로 런런 펀서우치, 세포쿠같은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어 등장한 스냅챗과 같은 서비스들은 지워야 할 ‘필요’를 ‘지워졌을 때의 ‘재미’로 치환하며 등장했다.
SNS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진화의 축은 우리의 수많은 욕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